저는 평소에 잠을 좀 늦게 자는 편입니다.
미대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야작에 익숙해지다 보니, 집에서 생활하고있는 지금도
생활 패턴이 잘 고쳐지지가 않더라구요.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렇게 밤 늦게까지 깨어있다 보면 필연적으로 배가 고파집니다.
그 날도 저는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새벽 2시 경 편의점에 가려고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저희 집은 19층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문을 나섬과 동시에 자연스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19층까지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19층을 지나 21층까지 올라가서 서더라구요.
다들 아마 알고 계실텐데, 아파트가 밀폐된 공간이기도 하고 엘리베이터도 철로 되어 있어서
한 두 층 높이 차이로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그 안에 사람이 타고 내리는 소리가 다 들립니다.
21층에 멈춘 엘리베이터로 엄마와 어린 딸이 담소를 나누면서 탑승하는 소리가 잘 들리더라구요.
평소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길 선호하는 저는 살짝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마주치면 인사라도 해야겠다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가 다시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띵동ㅡ'
'19층 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가 곧 도착하고 문이 열렸지만,
제가 엘리베이터 안의 모녀에게 인사를 건네는 일은 없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거든요.
21층에서 19층까지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려오던 모녀의 대화소리도,
문이 열리는 순간 귀신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새벽에 커피에 취해서 제 정신이 아니었던 건지, 그 광경을 보며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어? 뭐야 아무도 없네? 럭키w'
였습니다.
후다닥 엘리베이터에 타서 1층을 누르고 문이 닫히고 나서야
슬슬 이게 무슨 상황인지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구요.
그 이후로는 무슨 정신으로 편의점까지 갔다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잘못 들은게 아니라면
21층에서 사람이 탄게 아니라 내렸다는 가정도 해 볼 수는 있겠죠.
그럼에도 제가 21층에서 탑승한게 맞다고 확신 하는 이유는
제가 집 밖에 나와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을때
엘리베이터는 4층에 멈춰있다가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점과,
21층에 있는 두 가구 중,
2102호는 저희 할머니께서 혼자 살고 계셨고,
2101호는 빈 집 이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편의점 갔다 오면서 엘리베이터 타기 너무 싫었지만,
19층을 계단으로 올라가는 쪽이 훨씬 무서워서 눈 꼭 감고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왔습니다.
그 날 제가 들은 모녀의 목소리는 누구의 것 이었을까요.
차라리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도저히 합리화 할 수 없는 선명했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조금씩 소름이 돋게 만듭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킹아
제가 어디 모임 같은곳에 가서 공포썰을 푼다고 하면
래퍼토리처럼 늘 얘기하는 두 가지 실제 경험담 중에 하나였습니다.


페리도트
2022. 8. 17. 오후 4:03:43